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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백

진 수현 2013.01.12 13:57 조회 수 : 1474

사랑의 불감증

느끼고 깨달아야 것을 깨닫지 못할 때는 그것들의 반대되는 것들을 예로 들려주고 보여 필요가 있다. 좋은 음식만을 먹어본 사람은 음식의 진가를 모르고 습관적으로 받아 먹을 수가 있다. 사랑을 먹고 마시는 나와 같은 기독교인은 사랑의 불감증 걸려 있다 말할 수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랑다운 사랑을 하지 않고 있음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의 진단 방법으로 사랑 장이라 말하는 고린도전서 13 4절로부터의 말씀을 반대로 역어 보았다.  

-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오래 참지 아니 하며, 온유하지 아니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며,

-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랑하며, 교만하며, 무례히 행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          사랑하지 않는 자는 성내며, 악한 것을 생각하며, 불의를 기뻐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아니하며,

-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참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믿지 아니하며,

-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바라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견디지 아니 하니라.

-          사랑은 언제든지 서로 떨어지며, 예언도 더하고, 방언도 계속하고, 지식도 더하리라.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사랑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사랑할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릴 밖에는 없다.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 말씀 하셨는데 어찌해야 할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처녀가 애를 낳아도 말이 있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났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할 때는 이유가 있다. 잊기 위해 생각지 않으려 때는 무조건 싫다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오히려 자위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금하셨지만 변명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내게는 살이 안된 손녀딸이 있다. 비록 어리지만 부모가 교육을 시켜서 그런지 예와 아니오라는 대답을 수준에 맞게 구사한다. 싫은 것은 , 반복해서 물어도 “No”이다. 또한 좋아하는 것을 갖겠냐고 물으면 역시 “Yes” 믿기지 않을 만큼 명확하게 대답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대답을 , 번씩 반복하게 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때문에 안아 줄려고 팔을 벌려도 “No”라고 거절한다. 다음에 만나도 나쁜 기억 때문인지 Hi!라고 마지못해 대답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나이로 보아 지혜라는 말을 붙이기는 이르지만 아니요라고 답하는 것이 지혜이므로 마음이 믿음으로 자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불편과 시험이라는 말도 생각났다.

아이가 느끼는 불편을 어른의 말로 바꾸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시험이다. 아이는 시험을 피하기 위해 “Yes No”라는 대답을 확실히 했다고 수가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린 아이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되 , 어른 또한 이웃을 사랑이라는 말로 불편하게 해서는 된다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 수가 있었다.

또한 솔직과 정직이라는 말도 생각났다. .

기독교인 이라 말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말이 사랑이다. 어린 아이의 믿음을 뛰어 넘어 내가 싫어할 이유가 있는 사람을 사랑할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 보지만 대답은 아니다”. 동안 공염불 같이 뇌이기만 했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랑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는 말씀은 나에게 다른 변명의 여지가 되었다.

예수님이 명령 하시고 가르쳐 주신 사랑의 계명을 거역한다 할지라도 마치 어린 손녀 딸과 같이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생각된다. 어른들의 생각으로 싫어도 좋은 , 싫어도 사랑 하는 , 하는 것은 삶의 지혜일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직한 마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또한 생각해보면 이러한 익은 신앙만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상대방의 부적절한 언행심사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간사에는 서로의 불편한 관계인 불화를 예방하기 위해서 예의라는 철학도 있다. 이의 기본은 상대방을 존중하여 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한 것들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이나 자존심이라는 것도 있다. 겸손과 관용이라는 말로 이를 접을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양보하는 상대방의 심중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알만한 사람이 오히려 이를 이용하려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상식이라는 것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모르면 문명 사회에 살고 있어도 야만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이러한 사람과 가까이 엮이면 영육간에 손해는 되어도 좋을 것도, 득이 것도 없이 마음까지도 상하게 된다. 또한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는 사람은 고의적인 악의가 있다 말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하지 않으면 어렵게 받은 믿음의 선물과 이로 인해 갖게 기쁨과 행복과 평화의 산물들도 잃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기 좋은 말로 이해와 용서와 화해라는 말도 있지만 변화가 없는 옛날의 제자리로 돌아가면 내가 사람을 싫어하게 그것들을 다시 되풀이 하여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나의 고통이 된다. 시험이라 말하는 이러한 고통까지도 스스로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기독교 신앙은 보다 인간적이라고 믿어 왔다. 고행을 통해서 내가 갈고 닦아 하나님께 상달되어 의롭게 보이려는 종교와는 달리 기도교인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억지로 억제하여 싫어도 좋은 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돌릴 수가 없으면 사람과의 충돌을 피해, 모르는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상 계속해도 나만 옳다는 푸념만 계속 같다. 결단과 의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밖에는 없어 어쩔 수 없이 성령님께 의롸해 본다. 

올해는 관계 회복과 함께 관계 악화를 피할 있는 지혜로운 나와 제자 교회 형제 자매들이 되기를 기원한다.